병원비는 줄었지만, 진료받기는 더 어려워진 현실
정부는 중증장애인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의료비 지원 제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본인부담률 경감, 재난적 의료비 지원, 각종 바우처까지. 표면적으로는 혜택이 늘어난 게 맞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중증장애인들은 “더 병원에 못 가게 됐다”고 말합니다. 병원비를 덜어주는 정책이 왜 오히려 진료 접근성을 낮추는 ‘독’이 되었을까요? 그 아이러니한 현실을 짚어봅니다.
비용은 지원하지만, ‘접근’은 지원하지 않는다
많은 의료비 지원정책은 진료 이후의 비용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하지만 중증장애인에게 더 큰 장벽은 병원까지 가는 ‘과정’입니다. 이동 수단, 보호자 동반, 진료 예약, 대기시간 등… 이미 병원 도착 전부터 포기하게 만드는 조건들이 쌓여 있습니다.
"진료비는 싸졌는데, 병원에 갈 수가 없어요."라는 말이 현실을 대변하죠.
병원 시스템은 그대로, 진료는 더 어려워졌다
장애인을 진료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여전히 한정적입니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병원, 수면 내시경 등 전신마취가 필요한 검사에 대한 배려, 발달장애인을 위한 전문 의료진은 매우 드물죠.
결국 진료 접근성은 그대로인데, 지원금만 늘어나면서 ‘쓸 수 없는 혜택’만 쌓이는 겁니다.
항목 실태
편의시설 병원 | 전체 병원의 20% 미만 |
발달장애 전문진료센터 | 전국 39개소 불과 |
지원 기준의 ‘절묘한 배제’
중증장애인이라도 건강보험 상의 소득·재산 기준, 진단서 제출 요건, 특정 항목 제한 등으로 인해 의료비 지원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만성질환이나 반복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 횟수 제한과 한도 금액이 빠르게 소진되어 실질적 혜택은 미미합니다.
“중증인데도 안 된다고요?”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구조입니다.
비용은 깎아줬지만, 서비스 질은 더 나빠졌다
진료비 본인부담률이 낮아지면서 일부 병원에서는 중증장애인 환자를 꺼리는 현상도 생겨났습니다.
의료 수익이 줄고, 진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중증장애인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거죠.
그 결과 "오히려 진료 거부를 당했다"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행정 절차는 더 복잡해졌다
의료비 지원을 받으려면 진단서, 소득 확인서, 재산조회 동의서 등 다양한 서류가 필요하고, 일부는 매년 갱신해야 합니다.
심지어 병원 진료도 여러 번 나눠서 보고, 각 진료 기록을 수합해 제출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중증장애인과 가족에게는 큰 부담입니다.
서류 종류 제출 주기
장애인 진단서 | 연 1회 이상 |
건강보험 납입 증명 | 매년 갱신 |
소득·재산 증명서 | 신청 시 필수 |
당사자가 아닌 '시스템 중심'의 정책 설계
모든 의료비 지원 정책은 제도 설계자와 행정기관 중심으로 짜여 있습니다.
정작 병원에 가는 것이 가장 어렵고, 진료 받는 과정이 가장 힘든 사람의 관점은 반영되지 않았죠.
그래서 생기는 현상은 “제도는 있지만 내 삶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병원비만 줄여서는 진짜 접근성이 해결되지 않는다
의료비 부담 완화는 분명 필요한 정책입니다.
하지만 병원에 갈 수 없고, 진료 받을 수 없고, 의사 소통이 어렵고, 스스로 신청도 못 한다면 그 혜택은 ‘숫자’만 남는 껍데기가 됩니다.
중증장애인의 진짜 의료 접근권을 보장하려면 이동권, 진료권, 정보 접근권이 함께 보장돼야 합니다.
“지원한다”는 말보다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장애인의 의료권 보장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를 인정받는 방식'입니다.
정책이 존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정책이 실제로 당사자의 삶에서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제는 단순히 비용을 낮추는 데서 멈추지 말고, 병원 시스템과 의료문화 전반을 바꾸는 쪽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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